命運堂명운당

서고 · 이야기 二

하지 말라던 것들

「그러면 안 된다」고만 하고 까닭은 알려 주지 않던 말들입니다. 하나씩 들여다보면 대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금기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안 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설명을 붙이면 사람이 따지기 시작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기의 진짜 이유는 대개 말 속에 없고 그 뒤에 있습니다. 아래 아홉 가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위생·안전·살림살이의 규칙이었던 것들입니다.

一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지 마라북침

잠잘 때 머리를 북쪽에 두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그렇게 눕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상례에서 시신은 북쪽에 머리를 둡니다. 북쪽이 저승 방향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산 사람이 같은 모양으로 자는 것은 죽은 이의 자세를 흉내 내는 일이 됩니다.

일본에도 기타마쿠라(北枕)라 하여 같은 금기가 있습니다.

실용적인 풀이도 있습니다. 우리 집은 남향이 기본이라 북쪽에 머리를 두면 창을 등지게 되고, 겨울에 북쪽 벽이 가장 찹니다. 웃풍이 머리에 바로 닿습니다.

二집 안에 우물을 파지 마라터

마당 한가운데, 특히 집의 중심에 우물을 파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집 안에 구멍을 뚫는다」고요.

풍수에서 집의 중앙은 중궁(中宮)이라 하여 건드리지 않는 자리입니다. 여기에 구멍을 내면 기운이 샌다고 보았습니다.

실제 이유는 훨씬 분명합니다. 재래식 뒷간과 가까운 곳에 우물을 파면 오염됩니다. 장티푸스와 이질이 흔하던 시절에 이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우물과 뒷간은 멀리 두어라」는 말이 함께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이 원인은 몰라도 결과는 정확히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三대문을 마주 보게 내지 마라맞대문

두 집의 대문이 정면으로 마주 보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기운이 부딪친다고요.

집 안에서도 현관과 뒷문이 일직선이면 「재물이 들어왔다 그대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풍수의 기본 생각은 기운이 물처럼 흐른다는 것입니다. 곧게 뚫린 길로는 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굽이돌아야 머문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앞뒤가 일직선으로 뚫리면 바람이 그대로 통과합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도 먼지가 들이칩니다. 그래서 옛집에는 대문 안쪽에 내외벽이나 가림벽을 세웠습니다.

사생활 문제도 있습니다. 마주 본 대문은 서로의 마당이 그대로 보입니다. 이웃과 오래 살려면 그것부터 피해야 했습니다.

四이사한 집에서 첫날 밤터주

이사한 첫날은 불을 켜 두고 자라고 했습니다. 새 집의 터주에게 사람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밥을 지어 먼저 한 그릇 떠 놓고, 소금을 방 네 귀퉁이에 놓는 집도 있었습니다.

터주는 집터를 지키는 신입니다. 뒤뜰에 짚으로 만든 터줏가리를 두고 해마다 갈아 주었습니다.

실질을 보면 이렇습니다. 낯선 집에서 첫날 밤은 어디가 어딘지 모릅니다. 불을 켜 두면 밤에 깨어 화장실을 갈 때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더 그렇습니다.

「신에게 알린다」는 절차는, 그 집을 한 바퀴 돌며 살펴보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밥을 짓고 소금을 놓으려면 부엌과 방을 다 들여다봐야 합니다.

五우물에 침을 뱉지 마라용왕

우물에는 용왕이 산다고 했습니다. 침을 뱉거나 오물을 버리면 물이 마르거나 탈이 난다고 했습니다.

정월에는 우물에 금줄을 치고 용왕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았습니다.

이건 설명할 것도 없이 위생입니다.

마을 하나가 우물 하나를 나눠 썼습니다. 그 물이 상하면 온 마을이 앓았습니다.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실제로 그렇게 퍼졌습니다.

「용왕이 노한다」는 말이, 우물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규칙이었습니다. 순찰을 돌 사람도 벌을 줄 관청도 없던 곳에서 이야기가 그 일을 대신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우물 곁에 금줄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六밤에 머리를 감지 마라밤머리

밤에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특히 시험을 앞두거나 이사 전날에는 더 말렸습니다.

복이 씻겨 나간다고도, 밤에 젖은 머리로 자면 귀신이 붙는다고도 했습니다.

실질이 아주 분명합니다.

드라이기가 없던 시절에 밤에 감은 머리는 마르지 않습니다. 젖은 머리로 자면 체온이 떨어지고 감기에 걸립니다. 온돌방이라 바닥은 뜨거운데 머리만 차가워지니 더 그렇습니다.

「귀신이 붙는다」는 말은, 아침에 열이 나고 몸이 무거운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말릴 수 있으니 감으셔도 됩니다. 다만 덜 마른 채로 주무시면 두피에 곰팡이가 잘 자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七남의 신발을 신지 마라신발귀

남의 신발을 신으면 그 사람의 운을 밟는다고 했습니다. 특히 죽은 사람의 신발은 절대 신지 않았습니다.

신발은 사람을 대신하는 물건으로 여겨졌습니다. 초혼(招魂)할 때 옷을 흔드는 것과 같은 결입니다.

실용적으로는 무좀과 발 모양 때문입니다. 남이 신던 신발은 그 사람 발에 맞게 눌려 있어서 내가 신으면 발이 아프고 자세가 틀어집니다. 무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말에 「남의 신발을 신는다」는 표현이 남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신발과 사람을 겹쳐 보는 감각이 말 속에 남아 있습니다.

八문에 소금을 뿌리는 까닭부정

장례에 다녀오거나, 싫은 손님이 나간 뒤, 재수 없는 일을 겪은 날 문 앞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가게에서는 아침에 첫 손님이 그냥 가면 소금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소금이 썩는 것을 막는다는 눈에 보이는 성질에서 왔습니다. 그 힘이 눈에 안 보이는 것에도 통하리라 여긴 것입니다.

일본도 똑같이 씁니다. 스모 선수가 씨름판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가게 앞에 소금을 쌓아 두는 것(모리시오)이 그것입니다.

다만 손님이 그냥 갔다고 소금을 뿌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 손님이 보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액을 쫓겠다고 사람을 액으로 만드는 셈이 됩니다.

九손톱과 머리카락은 함부로 버리지 마라주술

깎은 손톱과 빠진 머리카락을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태우거나 땅에 묻었습니다.

남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저주를 건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여전히 그 사람과 이어져 있다고 보는 생각은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인류학에서 「감염 주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실제로 이런 저주 사건이 여러 번 기록되었습니다. 인형에 상대의 생년월일을 적고 머리카락을 넣어 묻는 식이었고, 발각되면 큰 옥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의 우시노코쿠마이리(새벽 두 시에 신사에서 짚인형에 못을 박는 것)도 같은 갈래입니다.

지금 보면 미신이지만, 그때는 이것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죄목이었습니다.

맺음

금기를 지키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왜 생겼는지 아시면, 어떤 것은 지금도 쓸모가 있고 어떤 것은 이미 쓸모가 다했는지 스스로 가리실 수 있습니다.

읽으신 것을 담당자님의 여덟 글자로 직접 보시겠습니까.
생년월일만 넣으시면 됩니다. 기본 풀이는 하루 한 번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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