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運堂명운당

서고 · 이야기 五

태어나고 죽는 일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을 치고, 돌에는 물건을 늘어놓고, 사람이 죽으면 마흔아홉 날을 세었습니다. 모두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절차입니다.

통과의례는 당사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 남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아이를 낳은 집에 금줄을 치는 것은 산모를 쉬게 하는 장치였고, 사십구재는 죽은 이보다 남은 이의 애도를 위한 시간표였습니다.

절차가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지 않습니다. 아래 일곱 가지는 그 헤맴을 덜어 주던 것들입니다.

一혼례에 밤과 대추를 던지는 까닭폐백

폐백에서 시부모가 신부의 치마에 밤과 대추를 던집니다. 받은 개수만큼 자식을 본다고 했습니다.

대추는 아들, 밤은 딸을 뜻한다고 풀이합니다. 대추가 붉고 씨가 하나라 아들에, 밤이 한 송이에 여럿 들어 딸에 견주었다는 설명이 흔합니다.

더 오래된 뜻은 다른 데 있습니다. 대추나무는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어 「거르지 않는다」 하여 자손을, 밤은 땅에 심어도 씨밤이 썩지 않고 뿌리에 남아 「근본을 잊지 않는다」 하여 조상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폐백상에는 반드시 이 둘이 올랐습니다. 자손과 조상, 두 방향을 한 상에 놓은 것입니다.

二아이 낳은 집에 금줄을 치는 까닭금줄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새끼줄을 왼쪽으로 꼬아 걸었습니다. 아들이면 고추와 숯, 딸이면 솔가지와 숯을 끼웠습니다.

이 줄이 걸린 동안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왼새끼를 꼬는 것은 일상과 반대로 하여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방식입니다. 장을 담근 독이나 서낭당에도 왼새끼를 썼습니다.

실질적으로는 격리입니다. 산모와 갓난아이는 감염에 가장 약합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 산욕열은 흔한 사망 원인이었습니다.

삼칠일(21일) 동안 외부인의 출입을 막은 것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합리적인 방역이었습니다. 「부정 타면 안 된다」는 말이 실제로는 「균이 들어오면 안 된다」였던 셈입니다.

三임신하면 오리고기를 먹지 마라태교금기

임신 중에 오리고기를 먹으면 아이 손발이 붙는다, 토끼고기를 먹으면 언청이가 된다, 게를 먹으면 아이가 옆으로 긴다 — 이런 말이 아주 많았습니다.

대부분 근거가 없습니다. 오리 발이 붙어 있으니 아이도 그렇다는 식의 닮은꼴 연상입니다.

다만 몇 가지는 실질적 이유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여름에 상하기 쉬운 어패류를 피하게 한 것, 제대로 익히지 않은 고기를 멀리하게 한 것은 식중독을 줄였습니다.

지금은 임신 중 식단에 대해 훨씬 정확한 지침이 있습니다. 날 생선과 덜 익힌 고기, 과한 카페인, 술을 피하라는 것이지 오리와 토끼를 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의사에게 물으실 일입니다.

四아이 이름을 천하게 지어라개똥이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이, 돌쇠, 막동이처럼 천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승사자가 데려갈 아이를 고를 때 귀한 이름을 먼저 본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천한 이름은 눈에 안 띈다는 것입니다.

이 풍습의 배경에는 무서운 숫자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 영아 사망률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태어난 아이의 상당수가 첫돌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죽는 일이 흔했기에, 이름을 낮춰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돌잔치를 크게 하는 것도 「이제 살아남았다」는 안도에서 왔습니다.

족보에 오르는 이름과 부르는 이름을 따로 두는 집도 많았습니다. 아명(兒名)이 그것입니다.

五아기 돌잡이삼신할미

돌상에 실·붓·활·엽전·책을 놓고 아기가 무엇을 잡는지 봅니다.

실을 잡으면 오래 살고, 붓과 책을 잡으면 글을 하고, 엽전을 잡으면 부자가 되고, 활을 잡으면 무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청진기, 마이크, 골프공, 마우스까지 올라갑니다. 상 위의 물건이 그 시대가 바라는 삶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돌잔치 자체에도 무거운 배경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첫돌을 못 넘기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돌을 맞았다는 것은 「이제 살 것 같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크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무엇을 잡느냐로 앞날을 점치는 것은 놀이입니다. 사주로 보아도 한 살배기가 잡은 물건이 그 사람의 명(命)을 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날 온 사람들이 아이의 앞날을 빌어 주는 자리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六사십구재를 지내는 까닭중음

사람이 죽으면 사십구 일 동안 이승과 저승 사이에 머문다고 봅니다. 이레마다 한 번씩 심판을 받아 일곱 번을 거친 뒤 갈 곳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레마다 재를 올리고, 마지막 마흔아홉째 날에 크게 지냅니다.

불교에서 온 셈법입니다. 이 사이의 상태를 중음(中陰) 또는 바르도라 부릅니다.

유교식 삼년상과는 뿌리가 다른데, 우리 상례에서는 둘이 섞여 있습니다. 절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면서 집에서는 제사를 모시는 식입니다.

심리학에서 보면 이 기간은 애도의 시간표 구실을 합니다. 이레마다 모여 함께 울고 함께 밥을 먹습니다. 혼자 슬퍼하게 두지 않는 장치입니다.

마흔아홉 날이 지나면 이제 보내 드려야 한다는 선이 그어집니다. 그 선이 없으면 슬픔이 끝날 자리를 못 찾습니다.

七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우는 까닭유품

장례를 치르고 나면 고인의 옷과 쓰던 물건을 태웠습니다. 남겨 두면 미련이 남아 못 떠난다고 했습니다.

실용적인 이유가 앞섰을 겁니다. 전염병으로 죽은 경우 유품은 그대로 위험이었습니다. 옷과 이불을 태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소독이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매듭이 됩니다. 애도 연구에서는 유품 정리가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다뤄집니다.

다만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즘은 오히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리하기를 권하는 쪽입니다. 곧바로 다 없애 버린 뒤에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련이 남는다」는 옛말 때문에 급히 태우실 일은 아닙니다.

맺음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사라진 자리에 다른 절차가 들어서지 않으면,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을 각자 알아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늘 나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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