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 · 이야기 一
옛이야기 열한 편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들입니다. 다시 읽으면 무섭기보다 슬픕니다. 이야기가 지어진 자리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함께 적었습니다.
옛이야기는 심심풀이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설명할 길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그것을 견디려고 만든 틀입니다. 아이가 물에 빠져 죽고, 흉년에 식구를 잃고, 재주 있는 자식이 세상에 못 나가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일을 그대로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로 옮겼습니다. 아래 열한 편을 읽으시면, 무서운 대목 뒤에 늘 사람의 사정이 깔려 있는 것을 보시게 됩니다.
一아기장수는 왜 죽어야 했습니까아기장수
가난한 집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있고, 눕혀 두면 혼자 날아올라 시렁 위에 앉아 있습니다.
부모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역적이 날 자식이라 하여 관가에서 온 집안을 멸할까 두려워, 제 손으로 아이를 눌러 죽입니다. 죽일 때 곡식을 함께 묻는 판본이 많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국에 수십 가지 판본으로 퍼져 있습니다. 우리 민담 가운데 가장 어두운 축에 듭니다.
영웅이 나쁜 세력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제 부모 손에 죽습니다. 그것도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억눌린 백성이 품었던 기대와, 그 기대를 스스로 접어야 했던 체념이 함께 들어 있는 이야기로 읽습니다. 뒤에 묻은 곳에서 용마가 울었다는 대목이 붙는 판본이 많은데, 끝내 접지 못한 미련일 것입니다.
二뒤를 돌아보면 돌이 됩니다장자못
인색한 부자에게 스님이 시주를 청하자 쇠똥을 퍼 줍니다. 며느리가 몰래 쌀을 담아 드리자 스님이 이릅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무슨 소리가 나도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따라가는데 뒤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납니다. 며느리는 참지 못하고 돌아봅니다. 집이 있던 자리는 못이 되어 있고,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습니다.
전국에 「장자못」이라는 이름의 못이 여럿 있고, 그 곁에 며느리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서 있습니다.
「돌아보지 마라」는 금기는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성경의 롯의 아내, 그리스의 오르페우스가 그렇습니다. 서로 오간 흔적이 없는데도 같은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지켜야 할 것을 알면서도 못 지키는 것이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뒤에 두고 온 것을 끝내 궁금해하는 마음이 어디서나 같았기 때문일 겁니다.
三해와 달이 된 오누이호랑이
어머니가 떡을 이고 고개를 넘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합니다. 고개마다 떡을 뺏기고, 팔다리를 뺏기고, 끝내 잡아먹힙니다.
호랑이는 어머니 옷을 입고 집으로 가 문을 두드립니다. 아이들은 손을 보고 알아챕니다.
아이들이 나무 위로 도망쳐 하늘에 동아줄을 청하고, 썩은 동아줄을 잡은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집니다. 수숫대가 붉은 것이 그 피 때문이라는 대목으로 끝납니다.
일본 야마우바 이야기와 얼개가 거의 같습니다. 어머니를 잡아먹고 어머니 행세를 하는 산의 노파 말입니다.
산길이 실제로 위험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조선 시대 기록에 호환(虎患)으로 죽은 사람 수가 남아 있고, 적지 않습니다. 「고개를 혼자 넘지 마라」는 아주 실제적인 경고였습니다.
四에밀레종에 아이를 넣었다는 말성덕대왕신종
종이 자꾸 깨져 완성되지 않자, 어느 집 아이를 쇳물에 넣어 부었더니 비로소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 소리가 「에밀레(에미 때문에)」 하고 어미를 부르는 것 같다 하여 에밀레종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1998년과 그 뒤로 여러 차례 성분 분석이 이루어졌는데, 종의 청동에서 사람 뼈의 흔적인 인(燐)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넣었다면 나와야 할 성분입니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도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이 전설이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조선 후기, 종이 만들어진 지 천 년쯤 지난 뒤입니다.
큰 종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 소리가 얼마나 애달팠는지를 담으려다 나중에 붙은 이야기로 봅니다.
五선녀의 옷을 숨긴 나무꾼선녀와 나무꾼
사슴이 일러 준 대로 나무꾼은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숨깁니다. 하늘로 못 올라간 선녀는 나무꾼과 살며 아이를 낳습니다.
사슴은 「아이 셋을 낳기 전에는 옷을 보이지 마라」 했는데, 나무꾼은 둘을 낳고 옷을 내줍니다. 선녀는 양팔에 아이를 하나씩 안고 하늘로 올라가 버립니다.
요즘 눈으로 보면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옷을 숨겨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것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일본의 하고로모(羽衣) 전설, 중국의 우랑직녀와 같은 갈래입니다.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날개옷」 이야기입니다.
뒷이야기가 더 씁쓸합니다. 나무꾼은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만 어머니가 그리워 내려왔다가 다시 못 올라가고, 수탉이 되어 지붕에 올라 하늘을 보고 운다고 합니다.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진 사람의 끝을 그린 이야기로 읽으면 결이 달라집니다.
六우렁각시는 왜 나타났습니까우렁각시
홀로 사는 총각이 밭을 갈며 「이 농사 지어 누구랑 먹나」 하자 어디선가 「나랑 먹지」 하는 소리가 납니다. 논에서 우렁이를 하나 주워 항아리에 넣어 둡니다.
그날부터 집에 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숨어서 지켜보니 우렁이에서 색시가 나와 밥을 짓습니다.
총각이 참지 못하고 붙잡아 함께 삽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소문나 원님이 빼앗아 가고, 둘 다 죽어 새가 되었다는 판본이 많습니다.
밥상이 저절로 차려지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널리 퍼졌을까요. 혼자 농사짓고 혼자 밥해 먹던 사람의 고단함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이야기는 「기다리지 못하고 붙잡은 것」에서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구미호도, 선녀도, 우렁각시도 같은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七콩쥐의 신발 한 짝콩쥐팥쥐
계모와 팥쥐의 구박을 받던 콩쥐가 잔치에 가는 길에 신발 한 짝을 잃고, 그것을 주운 감사가 주인을 찾아 혼인합니다.
여기까지는 신데렐라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판본에는 뒤가 있습니다.
혼인한 뒤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콩쥐 행세를 합니다. 콩쥐는 연꽃으로, 구슬로 되살아나며 끝내 진실을 알립니다. 마지막에 팥쥐는 처참하게 죽습니다.
서양 신데렐라가 혼인으로 끝나는 데 비해, 우리 이야기는 혼인 뒤가 더 깁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다른 것으로 되살아나 말을 하는 대목이 들어갑니다.
억울하게 죽은 넋은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는 생각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八도깨비방망이는 왜 혹부리 영감에게만혹부리영감
혹부리 영감이 산에서 도깨비를 만나 노래를 부릅니다. 도깨비가 「그 좋은 소리가 어디서 나오느냐」 묻자 영감이 「이 혹에서 나온다」 하고 둘러댑니다.
도깨비는 보물을 주고 혹을 떼어 갑니다. 이웃의 다른 혹부리 영감이 흉내 냈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고 옵니다.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교과서를 통해 퍼진 것으로 봅니다.
일본의 「고부토리 지이산(瘤取り爺さん)」과 줄거리가 거의 같고, 우리 옛 문헌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1915년 조선총독부 교과서에 실린 것이 널리 퍼진 계기였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때 삽화의 도깨비가 뿔 달린 오니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도깨비 그림이 여기서 굳어졌습니다.
옛이야기라고 다 오래된 것이 아니고, 오래되었다고 다 우리 것이 아닙니다.
九심청이 몸을 판 값인당수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 연꽃으로 되살아나 황후가 되고, 맹인 잔치에서 아버지가 눈을 뜹니다.
삼백 석이라는 숫자가 눈에 걸립니다. 조선 후기 쌀 삼백 석은 웬만한 양반가의 한 해 살림을 넘는 큰돈입니다. 그런 값에 사람 목숨이 오갔다는 설정 자체가 이야기의 무게입니다.
뱃사람들이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대목은 실제 인신공희(人身供犧)의 기억과 이어 봅니다. 다만 조선 시대에 실제로 있었다는 기록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심청이 물에 빠졌다가 연꽃으로 나오는 것은 불교의 연화화생(蓮華化生)에서 온 그림입니다. 효를 말하는 이야기 안에 불교의 되살아남이 겹쳐 있습니다.
十지네와 두꺼비의 싸움지네장터
해마다 처녀를 바쳐야 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제물이 될 처녀가 평소 밥을 나눠 주며 기르던 두꺼비가 함께 굴로 들어갑니다.
이튿날 가 보니 커다란 지네와 두꺼비가 함께 죽어 있었습니다. 처녀는 살았습니다.
충북 청주 지네장터를 비롯해 전국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러 준 짐승이 목숨으로 갚는다」는 갈래인데, 우리 민담에 이 결이 유난히 많습니다. 은혜 갚은 까치, 의로운 개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지네와 두꺼비를 맞세운 데에는 실제 관찰이 있었을 겁니다. 두꺼비 피부에는 독이 있어 물었다가 함께 죽는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제물로 바쳐지던 관습을 짐승의 힘으로 끊는다는 대목은, 그런 관습이 끝나가던 시대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十一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호랑이
옛이야기는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합니다.
우리 민담에서 호랑이는 압도적으로 자주 나옵니다. 곶감을 무서워하고, 떡을 뺏어 먹고, 효자를 태워다 주고, 산신령의 몸종 노릇을 합니다.
실제로 조선의 호랑이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호환(虎患) 기록이 수없이 나옵니다. 한 해에 수백 명이 물려 죽은 해도 있고, 도성 안에까지 들어온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착호갑사라는 호랑이 잡는 군사를 따로 두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을 이야기 속에서는 우습게 만듭니다. 곶감 하나에 달아나고, 떡 하나에 속아 넘어갑니다.
무서운 것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사람이 두려움을 다루는 오래된 방식입니다. 일본이 오니에게 콩을 던지는 것도, 우리가 호랑이에게 곶감을 들이대는 것도 같은 마음입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명운당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해 내려온 것을 옮겨 적고, 그것이 왜 그렇게 생겼을지 곁에 붙였을 뿐입니다. 해석은 하나가 아니니 다르게 보셔도 좋습니다.
읽으신 것을 담당자님의 여덟 글자로 직접 보시겠습니까.
생년월일만 넣으시면 됩니다. 기본 풀이는 하루 한 번 무료입니다.